재림교회에 대한 질문과 답변

재림교인들에게 묻는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영으로 하는 언어란 말입니다. 또 14:39에서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재림교회가 방언을 권장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방언을 장려하는 장의 근거로도 쓰이고 방언을 반대하는 주장의 근거로도 쓰이는 이중적인 장입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4장의 배경부터 살펴봅시다.

1.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을 왜 기록했는가? 방언을 장려하기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방언을 하지 말 것을 권하기 위해서였는가? 본문을 연구해 보면 분명히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방언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방언의 남발을 염려하고 책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이 그 뜻을 모르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바울은 말합니다(고전 14:6-11). 그것은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요 서로 야만이 되는 것이며(고전 14:11) 만일 온 교회가 모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고전 14:23). 그러므로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라고 바울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방언의 은사를 모독하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지절거리는 방언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방언에 대한 언급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해석의 전제로 삼아야 합니다.

2. 고린도전서 14장의 전반부는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면서 예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쉽게 말하면 14:2-4에서의 방언은 “하나님께 한다”느니 “알아듣는 자가 없다”느니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느니 “자기의 덕을 세운다”느니 하는 말들은 다 방언을 장려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언의 탁월성에 비하여 방언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내용을 부정적으로 한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4:3의“그러나”가 그것을 증거 합니다. “그러나”는 그 뒤에 나오는 문장이 앞 문장보다 더 긍정적일 경우에는 그전 것은 옳지 않지만 후의 것은 옳다는 것을 나타내는 접속사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4:1-4을 그 원래의 뜻을 풀어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내가 지금부터 예언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말해 주겠다. 너희 교회에서 지금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방언이란 원래 사람들, 그중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너희가 쓰는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덕만 세우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그것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냐? 그리고 그것은 성령께서 주신 방언의 원래 목적도 아닌 것이다. 예언은 사람에게 알아듣게 말하기 때문에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자기의 덕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다.”

3. 고린도전서 14:14에는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혼이 기도하거니와 영혼의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방언은 과연 영혼의 기도입니까? 그렇다면 한국말로 하는 기도보다 방언 기도가 더 응답이 잘되는 영적인 기도라는 말입니까? 여기의 “영”도 참된 “영적인 기도”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사람의 마음이 알지 못하는”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인간의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기도라는 뜻입니다. 그런 기도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열매가 없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일 리가 없습니다.

4.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하늘의 언어라느니, 영으로 비밀을 말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의 증거라느니 하는 말들은 고린도전서 14장을 분석해 보면 근거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방언이 예언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부정적으로 사용된 말들입니다. 영으로 기도한다는 말도 참된 영적인 기도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기도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인 것입니다.

5.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4:39에서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성령의 은사인 방언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금지하는 것은 단지 생명 없는 소리 즉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지껄이는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고린도 교회에 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방언 현상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성령의 은사로 방언을 말하고 통역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라는 말 앞에 “내가 가서 친히 볼 때까지”라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