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 28

제21장 청지기 직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간과 기회와 재능과 재산과 세상의 축복들과 그 자원들을 위탁받은 그분의 청지기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정당하게 사용해야 할 책임을 그분께 지고 있다. 우리는 그분과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위하여 성실하게 봉사하며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분의 교회를 유지하며 발전시키기 위하여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한다. 청지기 직분은 자애로운 품성을 계발하고 이기심과 탐욕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다. 청지기는 자신의 충성됨의 결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르러오는 축복들을 즐거워한다.” -기본 신조, 21.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 생애를 산다는 것은 굴복 곧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어떻게 굴복하셨으며 자신을 포기하셨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제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부르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히 헌신했다고, 곧 완전히 굴복했다고 생각할 바로 그 때, 우리의 헌신이 얼마나 얕은지를 보여주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생애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때, 우리의 헌신은 자라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항상 매우 부드럽게 우리의 주의를 자아가 굴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다른 영역으로 이끄신다. 그리하여 생애는 우리의 자아와 생활 양식과 행동 방식 속으로 점점 더 심화되는 일련의 그리스도인 재헌신을 계속한다.
우리가 우리의 인간됨과 모든 소유를 이 모든 것의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고전 3:21-4:2)께 바칠 때, 그분께서는 그것을 받으시나 도로 우리에게 맡겨주시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청지기로, 또는 관리자로 삼으신다. 그러므로 안락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 주께서 헐벗고 옥에 갇히고 나그네로 사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사라지게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쳐” 라는 그분의 항구적인 명령은 교회의 활동들-나누어주고 가르치고 전도하고 침례 주는-을 우리에게 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한다. 우리는 그분 때문에 충성된 청지기들이 되고자한다.

청지기 직분이란 무엇인가?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 우리는 비싼 값으로 산바 되고 구속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나 그것은 되찾은 것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창 1:1)셨기 때문에 우리는 태초부터 그분께 속하였다. 성경은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시 24:1)이라고 분명히 진술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시에 당신의 소유를 인간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계속해서 세계와 그 거민과 그 가운데 있는 것들(시 24:1)의 참된 소유주가 되신다. 십자가에서 그분께서는 인간이 타락시에 사단에게 넘겨 주었던 것을 당신의 소유로 되찾으셨다(고전 6:19, 20).
청지기는 “타인의 집이나 재산의 관리를 위탁받은” 사람이다. 청지기 직분은 “청지기의 지위나 의무, 또는 봉사”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청지기 직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탁하신 모든 것-생명, 육체, 시간, 재능 및 능력, 물질적인 소유, 타인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진리에 대한 지식-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사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소유물에 대한 관리자로서 봉사하며 생애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세에서의 영원한 사물에 대해 보다 더 높은 청지기 직분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하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는 법을 배우는”* 거룩한 기회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보다 더 넓은 차원에서, 청지기 직분은 “생애를 현명하고 이타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방법들
생애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영역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그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몸과 능력과 시간과 물질적인 소유를 주셨다. 그것에 부가하여,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세계를 돌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다스릴 통치권을 부여받았다.

몸에 대한 청지기 직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자신에 대한 청지기들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눅 10:27).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능력과 기회를 최선껏 활용하여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계발할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저들의 동료 인간들에게 보다 큰 축복이 됨을 증명할 수 있다(본서 21장 참조).

능력에 대한 청지기 직분. 각 사람은 특별한 소질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음악 분야에, 다른 사람은 재봉이나 자동 기계를 다루는 것과 같은 손으로 하는 일에 재능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친구를 사귀며 남과 잘 어울리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보다 고독한 생활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재능들은 그 소유자나 혹은 본래 그것을 시여하신 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사용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나, 아니면 개인적인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재능을 부지런히 연마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재능들을 배가시키기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재능들(마태복음 25장)을 계발해야 한다. 선한 청지기는 그들의 주인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돌려주기 위하여 그들의 재능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시간에 대한 청지기 직분. 충성된 청지기로서 우리는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 24).
성경은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 16)고 우리에게 훈계한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늘 아버지의 사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눅 2:49).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매순간은 귀중하다. 그것은 영생을 위하여 품성을 형성하도록 주어진다. 시간에 대한 충성된 청지기 직분은 주님을 알고 동료 인간을 도우며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을 때, 그분께서는 제칠일 안식일을 당신과 교통하기 위한 거룩한 시간으로 매어 놓으셨다. 그러나 엿새는 인간 가족들이 유용한 일에 종사하도록 제공되었다.

물질적 소유에 대한 청지기 직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땅을 개간하고 동물계를 다스리며 에덴동산을 돌보는 책임을 맡겨 주셨다(창 1:28, 2:15).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것으로 즐길 뿐만 아니라 관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한 가지 제한이 가해졌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이 나무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소유주로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신 분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 이 제한을 존중함으써, 첫 부부는 그분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충성심을 나타내었다.
타락 후,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선악과를 통해서 시험하실 수 없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모든 선하고 온전한 선물의 근원이시며(약 1:17)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이심(신 8:18)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줄 요소를 여전히 필요로 하였다. 당신께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심을 상기시켜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금 제도를 제정하셨다.
결국 이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을 부양하는 재정적인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세계적인 복음 전도를 지원하기 위한 건전하고도 성서적인 방법으로서 레위족 제도를 모델로 삼았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는 당신의 백성들의 노력과 헌금에 의존해야 한다고 규정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께 십일조와 헌금을 드림으로써 당신과 함께 일하는 이타적인 동역자들이 되도록 그들을 부르신다.
1. 십일조. 우리 시간의 칠분의 일(안식일)이 하나님께 속하는 것처럼, 우리가 얻은 모든 물질의 십분의 일도 그분께 속한다. 성경은 십일조는 “여호와께 성물”로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레 27:30, 32)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분의 것이므로 그분께 돌려드려져야 한다.
십일조 제도는 그 단순성이 뛰어난다. 그 공평성은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균등하게 요구하는 사실 가운데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재산을 사용하도록 맡겨주신 데 비례해서, 그분께 십일조를 돌려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요구하실 때(말 3:10), 그분께서는 감사의 정신이나 관대함에 호소하지 아니하신다. 비록 감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온갖 표현 가운데 일부가 되어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린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당신께 돌려주도록 요구하신다.
1) 십일조를 바침에 대한 예. 십일조를 바치는 일은 성경 전편에 결쳐 인정된 행위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그 얹은 것에서 십분 일”을 주었다(창 14:20). 그와 같이 함으로써, 그는 멜기세덱의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인정하였으며 이 신성한 제도를 익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십일조를 드림에 대한 이같은 간략한 실례는 그것이 이미 그같은 초창기에도 확립된 관습이었음을 나타낸다.
분명히 야곱도 십일조를 드리라는 요구를 이해하였다. 유랑자요 탈주자로서 그는 여호와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라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한 나라로서 건국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번영이 의존되어 있는 거룩한 제도로서 십일조에 관한 법을 재확인하셨다(레 27:30-32; 민 18:24, 26, 28; 신 12:6, 11, 17).
신약 성경은 이 제도를 폐지 하기는 커녕 그 타당성을 당연시한다. 예수께서는 십일조를 인정하셨으며 그 정신을 위반하는 자들을 정죄하셨다(마 23:23).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상징하는 희생 제물들을 규정하는 의문의 율법은 그분의 죽음으로 끝났을지라도, 십일조 제도는 끝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인의 십일조 헌납에 대한 모본이다.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처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히 5:9, 10, 7:1-22)십일조를 바쳐야 한다.*
2) 십일조의 사용. 십일조는 신성하다. 그러므로 신성한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주께서는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소나 양의 십분 일은…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레 27:30-32)라고 명령하셨다. 그분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말 3:10)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경우 십일조는 종족의 기업을 배당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예배를 장려하고 성소에서 봉사하며 여호와의 율법으로 백성들을 교훈하는 일에 그들의 모든 시간을 사용해야만 했던 레위 족속을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민 18:21, 24).
십자가 이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레위 족속의 제사장 직분의 역할이 끝났을 때, 십일조는 여전히 하나님의 교회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였다. 바울은 레위 족속의 봉사와 새롭게 수립된 복음 사업과의 유사성을 끌어냄으로써 이것의 이면에 있는 원칙을 설명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1-14).
그러므로 교인들은 기어이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말 3:10)해야 한다. 즉 다른 말로 바꾸면, 목사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에 충분한 자금이 있도록 해야 한다.”**
2. 헌금들. 감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십일조에 한정시킬 수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성소와 훗날의 성전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헌물”, 곧 자진하는 마음에서 바친 헌물로 건축되었다(출 30:2-7; 대상 29:14 비교). 그리고 특별한 헌물들은 이들 예배 장소의 유지비로 충당되었다(출 30:12-16; 왕하 12:4, 5; 대하 24:4-13; 느 10:32, 33).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그들의 수입의 사분지 일 내지는 삼분지 일 정도의 많은 액수를 종교적 자선적인 목적에 바쳤을 것이다. 그같은 관대한 헌신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던가?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충성됨에 따라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말 3:10-12).*
오늘날도 역시 주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번영케 하신 대로 관대하게 바치도록 호소하신다. 헌금은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며 운영하는 일과 복음의 실질적인 중요성을 나타내는 의료 선교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하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많이 바쳐야 할까? 아니면 그들의 헌신의 모본은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것일까?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청지기 직분의 원칙을 제시하셨는데, 하나님께 바치는 선물은 우리가 누린 빛과 특권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어 내보내셨을 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말씀하셨다. 이 원칙은 재정적인 축복을 나눠주는 일에도 적용된다.
신약 성경의 그 어디에도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완화시키는 곳은 없다. 우리의 특권과 축복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것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받은 몫은 분명히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감사는, 구원의 복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보다 관대한 정신을 통하여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면 될수록 그것을 지원하는 일이 더 크게 필요된다.
3. 현존하는 원칙. 청지기 직분의 원칙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는 것에도 적용된다. 십일조는 세속적인 물질적 소유에 따르는 우리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기본적인 시험대인 반면에,* 현존하는 그 원칙을 우리가 적용하는 방법 또한 우리에게 시험이 된다.
물질에 대한 사용은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다. 돈은 선을 위한 능력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수중에 있을 때, 가난한 자에게는 먹을 것을, 목마른 자에게는 마실 것을, 벗은 자에게는 의복을 제공할 수 있다(마 25:34-40).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돈은 그것이 생애의 필요를 제공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며 당신의 사업을 지원하는 일에 사용될 때 크게 가치가 있다.
4.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불충성.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청지기 직분의 거룩한 원칙에 대해서 무지하며 또한 그것을 무시한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까지도 소수만이 청지기로서의 그들의 역할을 인정한다. 이스라엘의 불충성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그분께서 이 문제를 어떻게 간주하시는가에 대하여 분명한 통찰력을 준다. 그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했을 때, 그분께서는 그것은 결국 도적질과 같은 것이며(말 3:8)그들이 번영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불충성된 회계(會計) 때문이라고 경고하셨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9).
주께서는 은혜의 제공과 더불어 미리 경고하심으로써 당신의 인내와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셨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 3:7).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축복을 베푸셨으며 당신의 신실하심을 시험해 보도록 그들에게 촉구하셨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3:10-12).

지구에 대한 청지기 직분. 현대 과학은 지구를 연구와 실험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로 만들었다. 그와 같은 연구는 많은 유익한 것들을 생산해 낸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또한 공기와 물과 땅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 기술은 자연을 현명하게 관리하기보다는 교묘하게 조작하였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청지기들이다. 그러므로 생태계의 균형을 본래대로 유지시킴으로써 모든 면에서 생명을 보존시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림시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계 11:18) 것이다. 이같은 견지에서, 그리스도인 청지기들은 그들 자신의 소유뿐만 아니라 주변의 세계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청지기로서의 그리스도
올바른 청지기 정신은 사심이 없는 정신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봉사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잔혹함과 당신의 친 백성들에 의해 거절당하는 보다 처절한 고통과 하나님께 잊혀진 바 된 나락 같은 상황을 견디어내셨다. 이같은 선물에 비할 때, 우리는 무엇을 바칠 수 있겠는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그분의 소유물-비록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실지라도-가운데서 일부를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주셨다. 그것이 청지기 정신이다. 그같은 가장 큰 선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아로부터 벗어나 그분처럼 되게 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돌보는 교회가 되게 하여 신자의 교제 가운데 들어온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다 돌보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청지기 직분은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청지기 직분의 축복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에게 청지기 역할을 맡기셨다.

개인적인 축복.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 생애-시간, 재능, 몸 및 물질적 소유-를 당신께 끊임없이 바치도록 요구하시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과 품성 계발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다함이 없는 사랑을 항상 인식하게 될 때, 우리의 사랑과 감사는 성숙하게 된다.
충성된 청지기 직분은 또한 우리로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승리를 얻도록 도와준다. 인간의 가장 큰 원수 가운데 하나인 탐욕은 십계명에서 정죄되고 있다. 예수께서도 그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규칙적으로 드리는 헌금은 우리의 생애에서 탐욕과 이기심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청지기 직분은 절약과 능률의 습관을 계발하도록 이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갈 5:24)음으로, 우리는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청지기 직분의 원칙이 생애를 지배하게 될 때, 심령은 밝아지며 목적은 확고해지고 불건전한 양상의 사교적인 기쁨은 제거되며 사업적인 활동은 황금률의 지배하에서 이루어지게 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과 충성의 생애에 나타나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풍성한 축복들이다.”*
그윽한 만족과 기쁨은,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투자된 모든 것 위에 주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말을 기록하신다는 확신에서 이르러온다. “너무 귀중해서 우리가 예수께 드릴 수 없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의 관리 하에 맡겨주신 재물의 달란트를 그분께 돌려드린다면, 그분께서는 우리 손에 더욱더 많이 맡겨주실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는 모든 노력은 그분에 의해 보상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의무는 우리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타인에 대한 축복. 참된 청지기들은 그들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된다. 그들은 청지기 직분에 대한 바울의 명령을 실행한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8, 19).
청지기 직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포함하며, 그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베푸신 것들을 기꺼이 나누어주고자 하는 정신이다. 이것은 “더 이상 인생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돈이나, 우리가 획득한 직함이나, 우리가 아는 중요한 인물이나, 우리가 사는 집과 이웃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위와 영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진정한 삶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분과 같은 자애롭고 관대한 특성을 계발하며 그분께서 우리를 번영케 하신대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진정 주는 것이 진정 사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축복. 청지기 직분에 대한 성경의 계획을 따르는 것이 교회를 위하여 필수 불가결하다. 교인들을 주는 일에 계속적으로 참여시키는 일은 운동과 같다. 그것은 튼튼한 교회가 되게 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풀어주신 축복들을 나눠주는 일에 참여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필요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응할 준비를 하게 한다. 교회는 목사를 부양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인근에 확장하며 세상의 오지(奧地)까지 넓히기 위한 충분한 자금을 갖게 될 것이다. 교회는 그분의 축복을 인해 사랑과 감사의 정신으로 기꺼이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마 24:14) 선포될 때 당신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보증에 비추어, 모든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와 청지기가 되라는 초청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증거는 세상에 대하여 강력한 축복이 될 것이며 교회의 충성된 청지기들은 복음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에게 뻗어 가는 것을 볼 때 기뻐할 것이다.